23과 재림의 주를 맞이할 인격
재림의 주를 맞이할 인격
제1과 소금과 빛이 된 자
- 마 5:10~16, 요절:16 -
서 론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은 그리스도의 왕국을 이루기 위한 목적인데 재림의 주를 맞이할 자의 인격을 먼저 입을 열어 가르치게 되었다(마7:22~23). 아무리 선지요, 이적과 권능이 있다 하여도 불법을 행하는 자는 그날에 설 수가 없다는 것을 결론으로 말씀한 것이 마 5장, 6장, 7장에 가르친 교훈이다. 언제나 사람도 무엇을 할 적에 나는 이러한 목적을 두고서 일한다는 것을 발표하고야 일을 개시하는 것이다. 그와 같이 주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첫 번 입을 열어 말씀할 때에 주님께서 가장 요구하는 사람은 이러한 사람이라는 것을 가르친 것이 산상보훈이라는 교훈이다.
이제 소금과 빛이 되는 일에 대하여 성경을 공부한다.
1대지 :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다 (10~12)
언제나 소금이라는 것은 자기를 희생하여 큰 변동을 일으키는 것을 소금이라는 것이다. 소금의 변동이 없이는 이 사회는 다 부패를 가져올 것이다. 아무리 세상이 부패했지만 그 시대 시대의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던 참된 종들이 나타나서 참된 역할이 나타나므로 참된 진리가 세상에서 보존되어 내려온 것이다. 언제나 악자에게 진리의 사람이 훼방을 받고 핍박을 받은 것은 과거나 현재나 미래가 똑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핍박을 받는 종을 들어서 당신의 생명의 말씀을 바로 전하게 해서 그 시대의 부패를 책망하고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도록 역사한 것이니 우리는 소금과 같이 되려면 핍박을 무서워 말고 희생적인 정신으로 나가야만 주의 나라를 이룰 수가 있을 것이다. 만일 어떤 종이 핍박이 있다고 해서 주의 진리를 증거하지 못하고 만다면 소금같이 된 진리의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진리가 없이 세상은 아무런 생명도 없고 아무런 맛도 없는 세상이다. 그러므로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고 나서는 종이라야 부패가 없고 참된 맛으로 이루어지는 아름다운 시대를 이룰 것이다.
2대지 : 깊은 진리의 맛을 잃지 않아야 된다 (13)
기독교는 이 세상 밖에서 오는 것을 맛보는 체험이 없다면 맛을 잃은 소금이 된다. 예배할 때나 기도할 때나 찬송을 할 때나 전도할 때나 하나님께로 오는 역사가 없다면 아무 필요 없는 일이 되고 만다. 세상에 제일 맹랑한 것은 성신의 역사가 없는 교회라고 본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소금이 맛을 잃으면 아무 쓸데없는 것으로 버림을 당해서 사람에게 밟힘을 당한다고 했다.
기독교의 참된 진리 운동이라는 것은 조금도 형식이 필요가 없고 언제나 체험적인 산 종교가 되어야 된다. 나무가 아무리 커도 새로이 오는 진액이 없다면 그 나무는 말라서 필요가 없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교회에 종들이 하나님께로 오는 산 체험이 없는 종이라면 맛을 잃은 소금 같아서 아무런 역사가 없고 아무런 변동을 가져오는 열매가 있을 수 없다.
3대지 : 어두움을 밝히는 등불이 되어야 한다 (14~16)
마귀의 흑암을 뚫고 나가는 자가 아니면 도저히 재림의 주를 맞이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은혜시대 종들은 죽은 영을 살리기 위하여 마귀 흑암에서 그 영들을 구출시키기 위하여 흑암을 뚫고 이방 민족에게 매를 맞고 피 흘리기까지 그들을 위하여 길이 참고 복음을 전했던 것이다. 아무리 억울함을 당해도 일언반구의 불평 없이 “이 무리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요”라는 진리를 가지고 세계를 덮은 것이 이날까지 내려온 그리스도의 정병 되는 종들의 역사였다.
그러므로 죽기까지 양떼를 사랑하여 피 흘리기까지 싸운 자가 재림의 주를 맞이할 것이요, 주님 재림할 때까지 남은 종도 환란의 흑암이 와도 흑암을 뚫고 나가면서 양떼를 위하여 눈물 흘려 말씀을 전한 자는 재림의 주를 맞이할 것이다. 재림의 주를 맞이할 자는 빛을 사람 앞에 비추어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는 자들이다.
아무리 억울함을 당했고 죽음을 당했다 하더라도 그들의 죽음을 통하여 오늘 우리가 이 빛을 힘입어 구원을 받은 것을 생각할 때 어찌 할렐루야 영광을 돌리지 않을 수 있으랴!. 우리가 빚을 진 심정을 가지고 말씀으로써 남을 살려준다는 목적에서 싸우는 자에게는 재림의 주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결 론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택하여 세운 것은 세상이 너무나 악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을 세워서 한 마리의 양이라도 찾겠다는 목적이니 우리는 듣든지 말든지 복음을 전해야 할 것이고 우리를 대접하든지 말든지 우리 할 일은 해야 될 것이니 소금과 빛도 자기를 위하여 있는 소금도 아니고 자기를 위하여 있는 빛도 아니다. 만일 소금이 소금끼리만 있다면 무슨 필요가 있으리요, 등불이 등불끼리만 있다면 무슨 필요가 있으리요, 이와 같이 소금은 썩는 물건을 찾아가야만 될 것이고 빛은 어두운 곳을 찾아가야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재림의 주를 맞이하려면 조금도 남을 무시하지 말고 자기의 위신을 생각지 말고 소금이 썩는 물건을 찾아가서 자기 자체를 희생할 때에 거기에 큰 변동을 가져올 것이고 빛이 어두운 곳을 찾아갈 때에 즉시로 변동을 가져올 것이다. 이와 같이 재림의 주를 맞이하려면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제2과 마음에 죄가 없는 자
- 마 5:17~32, 요절:17 -
서 론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려 온 것이 아니고 완전한 것을 이루려고 오신 것이다. 율법은 마음에 성결을 줄 수가 없고 선지의 예언도 완전한 것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진 것이니 그리스도께서 역사한 것은 사람의 마음을 성결케 해서 죄의 근성을 없이하므로써 그리스도와 동등한 영광을 누리게 하자는 것이 주님이 오신 목적이다. 이제 마음에 죄가 없는 자라는 것은 어떠한 자라야 된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쳤다.
1대지 : 마음에 죄가 없이 남을 가르치는 자가 될 것 (19~20)
바리새교인과 서기관들은 외형으로는 율법을 행하는 자 같으나 마음으로 죄를 짓고 다니는 동시에 교만한 자들이다. 그러므로 의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보다 못하면 안 된다고 했던 것이다. 마음에 죄가 없이 성결한 생활을 하면서 남을 가르친 자라야 천국에서 큰 자가 된다.
참으로 진리를 가르치는 자가 되려면 진리는 거룩한 진리니 마음이 거룩한 자가 가르쳐야 하나님은 인정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일은 도덕이 아니요, 의식이 아니요, 영적 문제이니 하나님이 보실 때에 영적으로 하나님과 연합한 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역사 아래서 가르친 자라야 천국에서 큰 자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에 성령을 부어 주어서 마음에 충만함을 가지고 말씀을 증거하는 자가 되게 하시는 것이다.
2대지 : 형제와 화목한 자 (21~26)
하나님은 형제와 화목이 있는 자라야 그 제사를 받으시는 것이니 아무리 예물을 바친다 하여도 형제를 원망시키고 중심에 형제를 미워한다든지 무시하는 자라면 하나님은 그 사람의 기도를 받을 수 없는 것은 그 형제를 사랑하는 하나님이니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를 미워하고 멸시하는 자를 받아 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믿는 형제에게 화목을 위하여 조금도 형제의 마음을 낙심하게 한다는 것과 내 마음에 형제에 대하여 좋지 못한 마음이 있으면 이러한 자는 마귀의 참소에 걸리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정한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데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합심하여 하나가 되는 일이 없이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가 없는 것이니 재림의 주를 맞이할 자는 조금도 형제 사이에 잘못된 것이 없이 하나를 이루어야 될 것이다.
3대지 : 남녀간의 중심 성결이 있어야 한다 (27~32)
남녀라는 것은 성결이 없다면 마귀의 도구가 될 것이니 음욕이란 자체는 사단의 마음이니 하나님의 신이 있는 자라면 음욕이 있을 수 없고 성결하게 남녀의 합심 단결이 있어야 된다. 남녀라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하여 하나를 이루게 한 것이니 남자가 여자를 통하여 사명의 도움을 받고 여자는 남자의 받는 영광을 성결한 가운데 같이 이루기 위하여 창조를 받은 것이니 지체가 같은 한 몸의 관계를 사명적으로 갖고 있다.
그러므로 남녀 관계가 거룩치 못하면 수족 같은 인연이 있는 자라도 끊어 버리는 회개가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남녀가 성결치 못한 경우에는 오히려 끊어 버리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면 죄의 도구가 되는 생활이 될 것이니 남녀의 관계는 행동에서도 성결해야 되겠지만 중심까지 성결을 지키는 생활이 있어야만 될 것이니 이것은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성령의 완전역사로 말미암아 남녀의 성결한 생활이 있어야 재림의 주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만일 남녀관계에 중심성결이 없는 자라면 재림의 주를 맞이할 인격을 이루지 못한 자라고 볼 수 있다.
결 론
재림의 주를 맞이할 인격이라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이룰 수 없고 그리스도의 완전역사로 이루어질 것이니 주님께서 이 말씀을 가르친 것은 주님의 역사의 목적이 사람으로서 완전한 인격을 이루어서 재림의 주를 맞이할 수 있도록 하실 것을 목적하고 가르친 교훈이다.
언제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역사하는 것이 없다면 이것은 진리적인 역사가 아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오셔서 역사하는 것은 성결한 사람을 만들기 위한 목적인 것을 확신하고 이 목적을 위하여 기도에 전력을 두고 나갈 때에 주님의 역사로서 완전 성결을 소유할 수 있다.
제3과 참 사랑이 있는 자
- 마 5:38~48, 요절:44 -
서 론
참 사랑이라는 것은 하나님께만 있는 것이니 성자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하나님의 참사랑의 법을 행하기 위하여 오신 것이다. 사랑의 법이란 것은 조물주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생을 구원코자 하는 것 외에는 참사랑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가르칠 때에 율법을 초월한 참사랑의 법을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1대지 : 악자를 불쌍히 여기는 사랑 (38~42)
사람의 근본이 하나님 형상인데 악마에게 사로잡혀서 도구가 되어 공연히 선한 자를 대적하는 것은 자기의 양심이 아니요, 그 사람도 자기 마음대로 못하고 마귀에게 사로잡혀서 그와 같이 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에 공연히 나를 때리는 일이 있다 해도 그 생명을 불쌍히 보고 구원코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된다는 것이다. 또는 다른 사람을 억지로 돕지 말고 필요한 일이라면 절대로 단 마음으로 남을 돕는 자가 되어야 참사랑을 가진 자라고 보게 된다. 남이 나를 악하게 대하면 나도 같이 그렇게 한다는 것은 참사랑의 종이 아니요, 다른 사람이 도움을 구할 때에 억지로 마지못해 돕는다는 것도 참 사랑이 아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할 때에 하나님을 순종치 않아도 나를 불쌍히 보고 깨닫게 해주신 것을 생각하고 그 사랑 속에서 언제나 남을 너그러이 대해 줄 때에 하나님은 강하게 역사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정신은 사람이 구하므로써 하나님이 응답하는 것이 아니고, 알지 못하고 인간이 예수를 대적해도 하나님은 불쌍히 보고 인간을 향하여 아들을 대신 죽게 한 것이 십자가의 사랑이니 누구든지 그 사랑의 정신을 가진 자라면 무엇이나 마음에 불평을 두고 남을 대할 수 없고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 안에서 남을 대하게 될 것이다.
2대지 : 참된 사랑의 기도 (43~44)
사랑이라는 것은 나 자체가 완전히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알지 못하고 반대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 외에는 참사랑이 될 수 없다. 아무리 남에게 모든 것을 다 주었다 하여도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 마음이 없다면 이것은 참사랑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보실 때에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는 사랑 외에는 하나님은 인정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자기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을 받은 것이 영원한 속죄제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의롭게 보는 자는 핍박을 받을 때에 핍박하는 자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는 자를 의로운 사람이라고 하나님은 인정한다. 기독교의 참된 사랑이라는 정신과 사상은 이것이 근본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상에서 죄인을 위해 죽으면서 알지 못하고 반대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시고 지금도 기도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의 법을 행하시는 예수님의 역사이다.
3대지 : 온전함을 이루는 것이다 (45~48)
온전이라는 것은 하나님께만 있는 것이니 하나님께서 인생이 아무리 타락했지만 타락한 인생을 온전케 할 수가 없는 하나님이라면 우리 인생 자체에는 아무런 열매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악한 자나 선한 자나 의로운 자나 불의한 자를 똑같이 햇빛도 주시고 비도 주시는 것은 악한 자를 그냥 두고 복을 주는 것보다도 악한 자라도 온전하게 되는 것을 기다리는 하나님께서 주님 다시 올 때까지 기다릴 것이니 누구든지 그 사랑을 따라서 행하는 자라면 그 자신이 온전함을 이룰 수가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 사랑에서 역사하기 때문이다. 역사라는 것은 완전한 사람을 완전케 하는 것이 아니고 완전치 못한 인간을 완전케 하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이 사랑을 본받아서 그 사랑의 법을 순종하는 자라면 그 사랑의 역사를 통하여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결 론
참사랑은 하나님께만 있고 하나님을 순종하는 자에게 있는 동시에 그 사랑을 통해서 완전한 나라가 이루어 질 것이니 그 사랑의 법을 따라가는 자라면, 아버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자격이 있으므로 하나님은 그 사람을 신과 같이 알고 완전하게 들어 쓰는 것을 목적 두고 가르친 말씀이니 누구든지 이것을 무겁게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를 통하여야만이 내게도 이루어질 것을 믿고 나가야 할 것이다.
제4과 상 받을 일을 하는 자
- 마 6:1~21, 요절:20 -
서 론
하나님은 공의와 사랑이 계신 동시에 무엇이나 갚아 주는 신이시다. 벌을 주시는 것도 상을 주시는 것도 일 점도 가감 없이 갚아 주시되 갑절이나 주시는 것이니 사람이 세상에 나서 상 받을 일을 많이 하는 것이 가장 복 있는 자인데 재림의 주를 영접하려면 상 받을 일을 많이 한 자라야 맞이하게 된다. 아무리 그 영이 구원을 받았다 하여도 상급으로 갚아 줄 것이 없는 자라면 재림의 주를 영접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종된 자에게 어떠한 자라야 갚아 준다는 진리를 가르친 것이 이 본문이다.
1대지 : 주의할 일 (1~5)
아무리 구제를 하고 기도를 많이 한다 해도 사람에게 보이려는 것이 있다면 그 구제와 기도는 아무런 열매가 없다는 것이다. 언제나 물질로 하는 일이나 영적으로 하는 일에 하나님께서 갚아 줄 것을 믿는 마음에서 은밀한 가운데 보시는 하나님께 양심적인 행동이 되어야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생각을 살피는 자이시니 나는 조금도 하나님께서 원치 않는 것은 마음조차 가질 수 없다는 양심활동이 있다면 이 사람은 언제나 심령 소성을 받고 모든 일은 다 상급이 될 것이로되 이것이 없다면 모든 일이 다 허사가 되고 마는 것이다. 허사라는 것은 아버지께서 인정치 않는 일은 다 허사가 된다는 것이다.
세상의 물질이나 모든 일이 사람이 하는데 따라서 허사가 되고 안 되는 것이 좌우되는 것이니 사람이 이 땅 생활에서 조금도 헛된 일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 중심에서 하나님의 갚아 줄 것을 믿는 불타는 신앙이 있는 것이 아니고는 교회의 모든 일은 다 허사가 되고 말 것이다.
2대지 : 하나님이 받으시는 기도 (6~13)
기도라는 것은 의식이나 말에 있는 것이 아니고, 마음과 양심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양심에서 하나님이 받으시는 마음이 될 때에 그 시간에서부터 생각도 기도가 되고, 생활도 기도가 되고, 한 마디 마디의 말이 다 기도의 향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방송을 들으려면 어디나 똑같은 장치가 되어 있듯이 하나님께로부터 교통을 하려면 누구든지 양심 속에 똑같은 장치가 있어야 될 것이다.
1) 하나님이 먼저 아시는 것을 믿고 구할 것(6~8).
기도할 때에 내가 구하므로 하나님이 아신다는 마음을 가지지 말고 하나님이 먼저 아시는 일인데 내가 구하는 대로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인 것을 믿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기도해야 된다.
2) 주기도문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한다는 생각이 마음에 간절해야 된다(9).
세상을 분토 같이 보고 하늘나라의 것이 와야만 된다고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하늘에서 이루어지고 난 뒤에 땅위에 이루어진다고 믿을 때에 위의 것을 더 생각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10).
날마다 먹고사는 것은 내 힘에 있지 않고 하나님이 주시는 데서만이 생활한다는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조금도 정욕적으로 흐르지 않아야 된다(11).
항상 남의 죄를 용서하는 마음으로 나의 부족을 깨닫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12).
매일같이 마귀와 싸우는 생활에서 시험을 무서워 말고 하나님께서 건져 주실 것을 믿고 의지하는 마음이 강한 동시에 모든 전부는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믿고 용기있게 싸워야 될 것이다(13).
이와 같이 하는 기도는 언제나 열매가 되는 것이다.
3대지 : 물심양면으로 받드는 자 (16~21)
언제나 참된 봉사를 하는 자는 어려운 일을 놓고 남을 살리기 위하여 금식을 할 때에 하나님만 알게 금식하는 기도는 하나님이 산 제사로 받으시는 것이요, 물질로써 주의 일을 받들 때에 전부가 하늘의 보화가 되는 것이니 심은 대로 거두는 상급이 있다. 사람이라는 것은 물질을 바치거나 몸을 바치거나 다 희생의 제사가 되는 것이니 희생이라는 것은 자기의 힘과 물질을 소비하는 것을 희생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희생이 없는 자에게 아무 것도 줄 수가 없다는 것이니 금식은 자기의 피를 바치는 희생이요, 물질은 하늘의 보화를 쌓아 두는 희생이다. 자기가 쓰지 않고 바친다는 것도 하나님은 희생으로 보는 것이니 몸을 바치든지 물질을 바치든지 다 갚아 주시는 것이다. 상급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 위하여 희생한 대로 갚아 주는 것인데 물질을 바쳐서 이루어지는 일로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게 된다면 얼마나 이것이 큰 열매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세상 사람이 물질을 죄 되게 쓰므로 금전은 일만 악이 되는 근본이 되기도 하고 물질을 쌓아 두는 봉사가 있으므로 만민을 살리는 열매가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물질 자체가 죄가 되는 것이 아니고 물질을 잘못 쓰면 죄가 되는 것이다.
결 론
가장 복된 자는 상 받을 일을 많이 한 자이니 사도 바울은 이 진리를 알 때에 세상 영광을 분토같이 보고 왕권의 상급 하나만을 목적하고 매일같이 달음박질했던 것이다(빌3:13~15). 모든 종들은 다 이것을 위하여 싸우는 생활에서 완전함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므로 재림의 주를 맞이할 자는 상 받을 일을 위하여 죽기까지 충성을 다한 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