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년공과

24과 예수님의 제목 비유

비 유

제1과 개인 신앙에 대한 비유
- 마 13:17~23, 요절:23 -

서 론
주님께서 성신의 역사가 임하여 모든 사람이 바로 깨달을 때까지는 언제나 비유로 말씀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다. 비유라는 것은 모르는 사람들이 그 비유를 통하여 마음이 진리로 기울어지는 동시에 그 진리를 체험하는 것이 목적이다. 하나님은 대자연을 움직이는 것은 목적이 천국을 위하여 움직이는 것이니 식물에 대한 이치나 광물에 대한 이치나 인류 사회를 이루는 진리와 합법적이라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만물의 이치나 신앙의 이치나 꼭 같다는 것을 말씀한 것이 비유다. 이제 개인 신앙에 대한 비유를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1대지 : 신앙은 일시적인 흥분이 아니라는 것을 비유함 (17~21)
신앙은 역사적인 체계를 가지는 동시에 신앙 양심에 산 체험이 있어야 될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 복을 받는다 하는 말을 일시 흥분에 끌려 금시 즉각으로 무슨 일이 다 이루어지는 줄 생각하고 경솔하게 피동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 개인 신앙의 완전성을 가질 수 없고 모든 선지가 예언한 말씀을 믿을 적에 시대적인 하나님의 섭리를 분명히 알아서 반드시 어려운 문제가 닥쳐오더라도 이것은 성서에 입각하여 반드시 있어야 될 일이라고 깨닫는 마음이 있어야 된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길가에 뿌린 씨와 돌밭에 뿌린 씨를 들어서 잠깐동안 되어지는 일에 흥분되어 움직이는 일을 따라가는 자의 신앙 상태를 가르쳤다. 돌밭에 뿌린 씨가 비가 올 때에는 속히 자라는 것 같으나 가뭄이 올 때에 말라지고 마는 것같이 일시 모든 일이 은혜롭게 될 때에 일이 다 된 것 같이 생각하다가 그 일이 다 이루어지지 않고 그 일로 말미암아 어려움이 올 때에 넘어지고 만다는 것은 한 흥분에 끌리는 신앙이라고 보게 된다.

2대지 : 신앙은 세상 영화가 필요 없다는 것을 비유함 (22)
신앙이라는 것은 세상의 것을 초월하여 천국의 것을 목적한 것인데 세상 재리에 끌린다는 것은 기독교 신앙에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신앙의 대상자 되시는 성부, 성자, 성신은 역사하는 목적이 세상 물질이나 영광을 주자는 목적이 아니요, 영원하고도 완전한 것을 주자는 목적인데 신앙자가 세상의 일을 생각하고 염려를 한다든지 그 물질에 마음이 끌린다는 것은 그 시간부터 벌써 심령 상태가 죽는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사랑한다는 것은 우상과 같은 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앙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믿되 하나님의 완전 축복을 믿고, 그 하나님 뜻에 모든 것을 맡기고 나간다는 용기가 없으면 그 신앙은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목적을 천국에 두고 싸우는 생활에서 세상에 끌린다는 것은 그 시간부터 옆길로 가는 생활이니 옆길로 가는 시간부터 하나님과는 멀어지는 것이니 신앙자는 세상의 모든 물질이나 영광을 분토같이 보아야만 될 것이다.

3대지 : 항상 깨닫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비유함 (23)
신앙 생활은 정상적인 신앙에 서야 될 것이니 정상이라는 것은 항상 무슨 일을 당하든지 깨닫는 것을 가르쳤다. 아무리 열심이 있다 하여도 그 자체가 열매 되는 것이 아니고, 깨닫는 마음에서라야 열매가 되는 것이다. 깨닫는 마음이라는 것은 마음에 조금도 거리끼는 것이 없이 사는 생활이니 하나님과 교통하는 마음에는 작은 죄라도 잘못인 줄 깨닫는 동시에 하나님 말씀에 자기 부족을 깨닫는 동시에 깊이 깨달아지는 것을 가르쳤다.
돌밭에나 가시떨기가 있는 땅에는 그 내막이 순수하지 못하고 굳은 돌이 박혀 있고 쓸데없는 쓴 뿌리가 박혀 있으니 도저히 깨닫는 마음이 있을 수 없다. 깨닫는 마음이라는 것은 먼저 자기 마음에 아무 것도 없는 깨끗한 그릇이 되어야 할 것이니, 무엇이나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면 조금도 마음을 둘 필요도 없는 생각에서 순수하게 하나님만 바라보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생각하는 마음이라야 항상 깨닫는 마음이 있게 되니 만큼 성령은 역사해 주시는 것이다.
성신의 역사라는 것은 열매를 많이 맺자는 것이니 누구든지 자기 부족을 깨닫고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깨달을 때에 하나님께로부터 모든 보화로운 것이 마음에 충만히 임하게 되므로 열매가 많아지는 것이다.
이제 깨닫는 마음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요소를 말한다.

1) 작은 데서부터 충성한다는 것이요,
2) 은밀한 가운데서 삼가는 것이요,
3) 어려운 일이 올 때 담대한 것이다.

이 세 가지가 있는 사람은 항상 깨닫는 지각을 하나님께 받으므로 모든 일에 실패 같으나 결국은 성공이요, 모든 일이 아무 것도 아닌 작은 일 같으나 결국은 큰 성과를 거두게 될 것이다.

결 론
신앙이라는 것은 자연 법칙에 의하여 하나님의 진리가 글자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믿는 것이니 무조건 열심이 있다는 것은 오히려 불행스러운 일이 되고 말 것이니 반드시 깊이 깨닫는 마음에서 모든 난제를 해결하고 나가는 것이 있으므로만이 열매가 있는 종이 될 것이다.

제2과 신앙의 역사를 비유함
- 마 13:31~35, 요절:35 -

서 론
신앙이라는 것은 어떤 정치나 교육이나 또는 도덕, 수양을 초월한 산 생명의 활동이라는 것을 비유하신 것이다. 만일 기독교 신앙의 큰 변동을 주는 산 활동이 없다면 기독교는 오늘의 세계를 정복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비유로 말씀할 때에 다음과 같은 비유로 하신 것이다.

1대지 : 겨자씨 비유 (31~32)
겨자씨라는 것은 씨 중에 제일 작은 씨지만 그 속에 큰 나무를 이룰 수 있는 생명의 힘이 있으므로 밭에 심으면 자동적으로 큰 나무가 되어 공중에 새까지 와서 깃들일 수 있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3대 요소가 있다.

1) 지극히 작은 데서부터 하나님은 역사하신다

하나님은 위대한 신이시지만 절대로 무엇이든지 역사를 시작할 때 인간이 아무런 기대를 할 수 없는 자리에서 시작하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올 때에 유대 땅 베들레헴 말구유에 탄생했다는 것은 너무나 육안으로 볼 때에 미미한 일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하필이면 세상에 탄생할 때에 찬 말구유 위에 누였다는 것은 인간들의 위신이나 도덕이나 또는 권리를 볼 때에 이것은 이치에 합당치 않는 일이다.
지금도 새로운 역사라는 것은 인간이 볼 때에 사람의 머리로써 도저히 옳다고 할 수 없는 자리에서 시작되게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왕국이 시작될 때에 농촌에서 양을 치던 이새의 가정에 어린 목자 다윗을 택해서 만 왕의 왕조를 삼았다는 것도 너무나 미미한 일이요, 만왕의 왕이 올 때에 목수의 가정에 태어나되 마구간에서 났다는 것도 너무나 미미한 일이요, 인류 종말에 새 시대를 이루는 동방 역사도 지렁이 같은 야곱을 들어 쓴다는 것도 미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왜냐하면 하나님은 무소불능의 신이시니 적은 흙덩이로 사람을 만든 것도 천국을 이루는 인생 창조의 근본이라면 그리스도를 통하여 천국을 이루는 것도 지극히 작은 데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2) 본질이 변치 않게 역사한다

씨라는 것은 아무리 작은 겨자씨지만 어디를 가져다 심든지 겨자나무가 이루어지는 본질이 변치 않고 나타나는 빛이나 맛이나 모양이 꼭 창조의 본질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와 같이 기독교 역사라는 것은 조물주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인간이 진실치 못하고 변함이 많다 하여도 반드시 그리스도의 생명을 통하여 목적을 이루어 놓는 것이다.
기독교라는 것은 시작할 때가 생명으로 되었으니 끝도 생명이나 능력으로만이 이루어 놓는 것이다. 만일 어떤 신자가 산 생명의 약동하는 체험을 받지 못했다면 이 사람은 아무런 열매가 없는 것이로되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아들이는 산 체험이 있다면 다 그리스도의 가지로 열매가 나타나게 된다.

3) 유익을 주는 열매를 맺는다

기독교는 조금도 인류에게 손해를 주는 일은 있을 수 없고 인류에게 참된 행복을 주자는 목적에서 열매를 맺는 종교니 그리스도 한 분이 작은아이로 세상에 탄생했지만 전 세계 인류를 천국으로 인도하며 큰 나라를 이루고야 마는 것이다. 그러면 지옥에서 고통을 받을 인간들이 수많은 생명들로 천국을 이루게 된 것은 얼마나 유익한 일인가.

2대지 : 누룩 비유 (33)
기독교의 역사라는 것은 억지로 사람을 억압하는 종교가 아니고 자동적으로 하는 종교이다. 그러므로 누룩 비유에 있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 있다.

1) 맛을 나게 하는 것이다

누룩이라는 것은 가루에 들어갈 적에 누룩 자체는 쓴 것 같으나 그것이 들어가므로 좋은 맛을 내는 것과 같이 기독교의 진리라는 것은 처음에는 쓴잔 같으나 이것을 받아들이고 보면 자연적 큰 변화를 받아 부드럽고도 맛있는 떡과 같이 가장 부드럽고 재미있는 가정과 교회를 이룰 수 있다. 만일 어떤 기독교가 부드럽지를 못하고 좋은 맛을 잃어 버렸다면 이것은 참된 진리의 역사를 받는 교회라고 볼 수 없다. 언제나 진리라는 것은 큰 변화를 일으키는 힘이 있는 것이다.

2) 발전의 힘이 있다

기독교는 그 진리가 들어갈 때에 누룩이 퍼져 나가듯이 조금도 어떤 세력이 막을 수 없이 퍼져 나가는 힘이 있다. 아무리 핍박하고 억압을 준다 해도 어느 정권이나 병력이 당할 수 없다.
예루살렘 다락방에 떨어진 불길이 일어날 때에 무서운 박해가 정권과 교권으로 있었으나 금일에 와서 무서운 박해를 이기고 세계를 복음화시킨 그 힘이라는 것은 그 진리가 산 생명을 주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기독교의 진리를 통하여 역사하는 종은 작은 일같이 시작하나 그 사회의 큰 변천을 일으킨 것이다.

결 론
주님께서 비유한 말씀대로 기독교는 대 확장을 이룬 금일에 와서 우리는 이것으로만이 끝이 아니고 완전한 새 시대를 이루는 역사를 기준하여 필연코 마지막 결실을 하는 역사는 새로운 왕국을 이룰 것이라는 것을 굳게 믿고 나서야 된다. 지금 많은 기독교가 확장되었지만 참된 겨자씨의 열매가 참된 누룩의 변동을 일으키는 일이 끝난 것이 아니고 이제 더 크게 일어나게 되는 것을 알고 활동을 해야만 될 것이다.

제3과 심판에 대한 비유
- 마 13:36~43, 요절:43 -

서 론
하나님께서는 심판하기 위해서는 주님편이나 마귀편이나 다 동등한 자유를 주어서 얼마든지 활동할 수 있는 기간을 주시고 심판한다는 것을 가르칠 때에 씨를 뿌리는 비유로 말씀하셨다. 이제 주님의 역사와 마귀의 역사를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가 있다.

1대지 : 주님의 역사

1) 좋은 씨를 뿌리심(36~37)

하나님께서 세상에 주님을 보내서 역사할 때 좋은 씨를 뿌린다는 것을 말씀하시되 세상을 밭이라고 했고 좋은 씨를 천국의 자녀라고 했다. 그러므로 사람이 세상에 날 때에 모태로부터 좋은 씨로 택하여 세상에 나게 한다고 본문을 통하여 볼 수 있다.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좋은 씨가 되는 자라야 믿는 것이요, 나쁜 씨가 될 사람은 참으로 믿어지질 않는 것이다(요10:26~29).
신앙이라는 것은 택한 자에게 주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나님께서 종을 통하여 전도하는 것은 택한 자를 찾기 위하여 들어 쓰시는 것이다(행13:48). 그러므로 주님의 역사는 인간의 어떤 힘이나 방법이 필요가 없고 참으로 들어 쓰는 종을 통하여 택한 자를 찾으시는 데는 종을 강권으로 보내기도 하고 또는 택한 사람이 종을 찾아가기도 하는 것이다.
고넬료 가정에 천사로 지시하여 베드로를 찾아가게 한 일이나 또는 베드로에게 지시해서 고넬료를 찾아가게 한 것을 본다면 전부가 하나님께서 인도하는 것 뿐이다(행10:1~22).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은 주님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고 입을 열어 주는 대로 말씀을 증거할 것 뿐이요, 그 밖에 되는 일은 하나님께서 역사하므로만이 되는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인간의 어떤 방법으로써 전도하려고 계획한다면 성령은 역사하지 않고 언제나 택한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따라가는 것이 주의 인도를 따르는 종의 생활이라고 보게 된다(행18:9~11).

2) 선과 악이 함께 자라게 둠 (마13:28~30)

하나님께서 지금 잠잠히 계신 것은 택한 자녀를 찾아 구원할 때까지 가라지 같은 악한 자들을 그냥 두는 것은 택한 자를 아끼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악자를 벌하기 위하여 세상에 심판을 나릴 때는 용서 없는 때이니 택한 자가 완전하게 준비할 때까지 잠잠히 계시는 것이다. 이것은 택한 자가 완전한 열매를 맺기 전에 가라지를 불태워 버린다면 택한 자에게 큰 피해가 있기 때문이다.
이 비밀을 모르는 인간들은 가라지와 같은 사람들이 더 왕성하는 것을 보고 오히려 하나님이 없다는 말을 하게 되고 악자가 더 왕성하는 것을 볼 때 악자의 세력을 오히려 존중시하고 그 앞에 굴복하는 일도 있다. 자기가 어떤 곳을 갈 것이라는 걸 모르는 어리석은 인간들은 밭에 가라지가 더욱 키가 높아지고 더 왕성하듯이 심판기에는 악자의 세력이 머리를 들고 교만한 자리에 있다가 망할 것이다.
언제나 알곡이라는 것은 수가 적고 오히려 머리를 들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이 알곡이다.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지금 악자를 그냥 왕성케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는 나를 완전하게 되기까지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경륜인줄 알고 완전 준비를 갖추어야만 될 것이다.

3) 천사를 보내어 가라지와 알곡을 갈라놓음 (39~41)

하나님께서 진노의 날에는 천사를 보내서 알곡과 가라지를 갈라놓는 것은 다음과 같다. 어느 곳에 있든지 택한 자를 다 찾아서 한 곳에다 모으는 것이다(마24:31). 지금은 한 동네, 한 가정에 악자가 선자를 해치려는 일이 있지만 심판기에는 악자가 선자를 해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천사가 와서 강권 역사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택한 자를 진노의 날에 구원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택함 받은 사람으로서 악자를 두려워할 것도 없고 타협할 것도 없고 하나님의 뜻을 순종할 것 뿐이다. 모든 일은 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역사하는 것이다.

4) 의인으로 해같이 빛나게 함 (42~43)

지금은 악자들이 더 빛나는 것 같은 세상이 되었지만 새로운 왕국이 올 때는 악자는 슬피 통곡을 하게 될 것이고 의로운 하나님의 자녀는 크게 빛나는 생활이 있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마귀의 세력에게 권세를 주어서 쓰는 것은 의로운 자에게 더 큰 영광을 주기 위한 선한 방법이다. 이 세상이라는 것은 악자가 자기 세상같이 알지만 심판 날에 가보면 악자는 모든 한 일이 의로운 사람의 나라를 이루는 하나님의 모략 아래서 있는 것 뿐이다.

2대지 : 마귀의 역사

1)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역사하는 영이다(마13:39, 엡2:1~2)

하나님은 언제나 마귀에게 활동할 수 있는 권리를 준 것은 불택자를 다스리는 권세를 준 것이다. 그러므로 불택자는 아무리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도 마귀를 따르기를 좋아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역사를 조롱하게 된다. 바리새인들이 주님의 역사가 일어나도 짐짓 주님을 바알세불이라고 했고, 예루살렘 다락방에 성령이 임할 때에 악자들은 새 술에 취하였다고 악평을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불택자는 하나님의 비밀을 아는 것을 허락지를 않았다(마13:11).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는 것은 주님의 종으로 하여금 왕권을 받는 일에 더 큰 축복이 되게 하는 방법이다(마5:11~12).

2) 수가 찰 때까지 참소권을 줌(계12:7~10)

하나님께서 마귀의 권세를 들어서 택한 종을 참소하는 것은 완전한 왕권의 반열을 채우기 위한 방법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맡은 일에 충성을 다 하는 자만 수에 채우기 위한 방법이다.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방법이 아니고는 의로운 왕국을 이룰 수가 없기 때문에 성신의 역사를 일으키는 동시에 악령과 대립을 시키는 것이다(엡6:10~13).

3) 천하를 꾀이게 함(계13:7~8)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하시는 것은 심판하기 위한 모략적인 방법이다. 새 시대를 이루는 심판이라는 것은 마귀의 표를 받고, 받지 않은데 대하여 심판하는 것이니 심판기까지 마귀를 들어 쓰는 것은 새 시대를 이루기 위한 방법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 대 자연을 창조하시고 아담과 마귀와 대립을 시켰는데, 첫째아담이 이기지 못하므로 전 세계 인류는 마귀의 권세 아래 다 들어가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둘째아담 예수를 보내서 역사할 때에 택자와 불택자를 위하여 마귀와 주님과의 대립을 시켜서 주님이 완전히 승리하시므로 누구든지 택한 자는 다 마귀를 이길 수 있게 되므로 주의 나라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제4과 시대적인 역사를 비유함
- 마 13:44~50, 요절:49 -

서 론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위하여 진리운동을 하게 하시되 때를 따라 그 시대 사람에게 합당하도록 역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되 다음과 같이 역사한다.

1대지 : 값진 보화를 찾는 비유 (44)
기독교 복음 운동은 온 세계 인류에게 역사하는 것을 값진 보화를 발견하는 자와 같이 되도록 역사하신 것이다. 세계 사람이 영생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누구신지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알지 못하고 아무런 보화가 없는 생활을 하던 인간들에게 인생의 가장 만족을 줄 진리의 보화를 찾게 할 때에 모든 사람은 다 기뻐서 자기 모든 것을 희생해 가면서 자기의 소유를 삼는 것이다.
이제 감춘 보화를 발견한 자의 행동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볼 수 있다.

1) 기뻐함

2) 희생인데 누구든지 기독교의 숨은 보화가 되는 진리를 찾게 되는 사람은 억지가 아니고 참된 기쁨을 가지는 동시에 보화를 사는 것같이 전력을 다하는 것이니 우리는 기독교 복음운동을 할 때에 남을 억지로 지배할 필요는 없고 복음의 진리 하나를 그들이 깨닫도록 할 것 뿐이다. 만일 어떤 전도자가 참된 보화를 남이 찾도록끔 해 주는 역사를 떠난다면 그 교회는 완전히 설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라는 것은 자유가 있어야 한다. 자유라는 것은 소망이 확실할 때에 자동적으로 모든 일을 희생해서 하는 것을 참된 자유라 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처음에는 교회를 반대하고 교회는 하등에 자기와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던 자라도 그 교회 안에 있는 숨은 보화를 찾게 될 때에 자기 생명을 바쳐서라도 교회를 세우려는 것이 기독교 은혜시대의 진리운동이라는 것이다.
가장 힘있는 단체라는 것은 외형적인 일에 속한 것이 아니고 인간이 잘 알 수 없는 숨은 비밀에 확실한 소망이 보일 때에 완전한 단체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도 바울도 기독교를 반대했지만 그 속에 있는 보화를 발견할 때에 세상의 모든 것을 분토같이 보고 그 진리를 위하여 희생해 가며 교회를 세우는데 전력을 두었던 것이다(빌3:8~9).

2대지 : 진주를 찾는 비유 (45~46)
기독교는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하듯이 그리스도를 발견하여 섰다 하더라도 이날까지의 모든 교회는 값진 진주와 같은 참된 진리의 비밀을 발견치 못한 일이 많이 있으니 이것을 찾기 위하여 많은 종들은 성경을 해석하되 각 방면으로 해석하여 진리를 탐구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진주를 구하는 장사가 진주를 찾듯이 많은 사람이 기독교 안에 가장 귀한 진리를 완전히 찾게 되는 역사가 있다.
이것은 완전히 승리하고 지상왕국을 이루는 진리라고 보게 된다.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죽은 영이 산다는 것은 밭에 감추인 보화를 만나는 것과 같고, 중생 받은 사람이 진리의 다림줄을 찾으므로 새 시대를 이루게 되는 것은 진주를 찾는 장사와 같이 이날까지 모든 종들이 알고자 하던 진리요, 밤을 새워 가며 연구해 보던 진리다. 그러나 말세 변화성도로서만이 이 진리를 바로 찾아서 그 진리로 말미암아 새로운 시대가 이루어지기까지 승리해 나가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이날까지 찾던 것은 말세 비밀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완전히 찾은 자는 이 말씀을 완전히 자기의 소유를 삼는 생활을 하기 위하여 전력을 다하게 되는 것이다. 진주라는 것은 어두운 가운데도 빛을 내는 것이니 종말의 진리는 어두운 데서도 빛이 되는 완전역사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진주와 같은 진리로써 하나님의 종들이 완전 승리를 이루고 새로운 왕국을 이루기 위한 것이니 누구든지 참된 진리를 찾던 자들은 하나같이 무장을 갖추게 될 것이다.

3대지 : 그물을 치는 비유 (47~50)
기독교의 종말의 역사라는 것은 온 세계 인류에게 완전한 다림줄의 진리를 전파하고 그 말씀에 의하여 심판을 나리고 새 시대를 이루는 것이 기독교 종말의 역사인데 이것으로 완전한 끝을 맺는 역사이다. 아무리 진리를 듣고라도 그 말씀에 순종치 않는 자는 다 버리고 완전히 순종하는 자로써 새 시대를 이루는 것을 목적하고 주님은 바다에 그물을 치는 비유를 가르친 것이니 예언의 말씀을 듣고 순종치 않는 자는 버릴 것이요, 순종하는 자만으로 새 시대를 이루는 것이다.
의인과 악인을 완전히 갈라놓고 심판하는 것이니 종말의 진리를 전파할 때에 이것을 듣고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은 다 악인으로 취급하고 전멸시킨다는 것이다. 크고도 위대한 역사는 종말의 그물과 같은 예언의 말씀을 세계에 전도할 때라고 본다. 이날까지는 개인적인 구원 문제를 두고 역사했지만 말세의 심판기의 역사라는 것은 전 세계 인류를 구원할 자는 다 구원하고 버릴 자는 다 버리는 역사이다. 그러므로 이 때는 하나님께서 주의 천사를 동원하여 택한 자를 위하여 적극적인 역사를 하므로 의인과 악인을 갈라놓고 심판하는 역사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을 들어 쓰시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쓰신다. 모든 사람에게 완전한 보화를 받아 가지도록 역사하는 것이니 우리는 감추인 보화 같은 예수님을 찾았으며, 귀한 진주 같은 종말의 진리를 완전히 찾아서 온 세계 인류에게 큰 구원을 베풀며 심판을 나리는 재림의 주를 영접하기 위하여 최선의 희생적인 역할이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