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과 촛대교회의 역사
촛대교회의 역사
총 론
촛대교회란 것은 끝을 맺는 역사를 뜻한다. 예를 든다면 하루 동안 일하는데 낮에 일하는 인부가 있고, 밤에 일하는 인부가 있어서 공장을 계속 돌리므로 하루의 생산 분량을 채우듯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가 메시야로 와서부터 재림의 주가 올 때까지를 인간이 볼 때 하루 기간 같이 정해 있다.
그러므로 밤에 일하는 인부는 공장에서 등불이 없이는 일할 수 없는 것같이 기독교 복음운동에 있어서 낮과 같이 그리스도의 빛으로 밝아질 때의 역사는 누구든지 빛으로 오신 예수님만 믿으면 다 빛 가운데 행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주 재림기는 메시야의 빛으로 역사할 때가 아니고 재림의 주를 맞이할 신부들이 등불을 들고야 영접하는 때다. 왜냐하면 구약 이스라엘이 부패하므로 북방 앗수르와 바벨론에게 먹힘을 당하고 예루살렘 성전이 다 없어지고 도저히 성전에서 제사도 할 수 없고 모세 율법을 가르칠 수도 없는 흑암 시대가 왔던 것이다.
그때에 흑암 속에서도 하나님을 찾고 남은 자들이 동방 고레스의 역사로 예루살렘을 다시 복구할 때에 그 역사를 신약 때 가서 재림의 주를 맞이할 촛대교회의 역사를 목적하고 스가랴 선지에게 묵시가 나타났던 것이다. 이제 스가랴의 묵시를 공부할 때 촛대교회의 역사가 무엇이냐는 것을 공부하고자 한다.
제1과 시련을 통과함
- 슥 3:1~5, 요절:5 -
서 론
하나님께서 어두운 사망에서 죽은 영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를 극도로 쓴 고난의 과정을 거치게 하므로 그 십자가의 승리의 역사가 흑암을 물리치는 권세가 되어 많은 생명을 살리는 중생의 역사가 일어나므로 천하에 교회가 서게 되었고 환란과 재앙 가운데서 그 재앙을 면하고 새 시대에 가는데는 환란, 재앙을 벗어날 수 있는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고는 살 자가 없다.
그러므로 먼저 대표적인 종을 시련을 주어 말씀으로 완전히 승리케 하는 동시에 그 말씀으로 마귀와 싸워 승리하는 역사가 일어나서 모든 사람은 그 말씀에서 단결할 때에 원수의 세력을 이기고 새 시대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의 승리 역사라는 것은 일반에게 오는 것이 아니고 말씀으로 완전히 승리한 종이 전하는 말씀에 의하여 승리하게 된다.
1대지 : 사단으로 대적하게 하심 (1)
언제나 하나님께서 시대적인 역사를 일으킬 때는 그 역사를 일으킬 대표적인 종이 그 인격을 이루기까지 대적을 하는 사단으로 시련기를 주고 거기에서 완전히 쓰여질 종이 되도록 하는데는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첫째 : 충성된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한 목적이요,
둘째 : 겸손한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한 목적이요,
셋째 : 권세있게 쓰기 위한 목적이다.
하나님께서 사단을 들어 시련을 주므로써 그 종을 통하여 하나님의 새로운 일을 하는데는 무조건 들어쓰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인정을 받는 인격이 되기까지 사단으로서 괴롭혀 보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큰 싸움을 할 군대를 거느리는 대장은 적군의 무서운 침투를 막을 수 있는 인격이 있어야만 될 것이다. 이 인격을 이루는데는 원수에게 시달리는 전쟁을 통과한 자라야 많은 군대를 거느릴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기독교 종말에 흑암을 뚫고 나가는 촛대교회의 역사를 일으키려면 자기 자체가 흑암을 뚫고 나갈 인격을 가져야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만민의 죄를 걸머지고 인간들이 죄 값으로 받는 쓰라린 세상, 빈민의 노동 생활과 또는 심령 고통의 쓰라린 겟세마네 또는 인간이 죄 값으로 받는 사망의 고통을 골고다에서 십자가 사형을 친히 받은 후에 승리의 부활을 하므로써 전 세계 인류의 죽은 영들을 살리는 역사를 하므로 세계 만방에 교회가 서게 되었고 종말에 북방으로부터 환란이 올 때에 남은 자를 새 시대로 인도하는데는 아무리 환란과 재앙이 와도 그 가운데서 남은 교회가 되도록 진리를 바로 가르치는 종이 나와야 될 것이다.
금일에 기독교가 세계에 대 확장을 가져 왔지만 이 교회가 이대로는 도저히 남은 교회가 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사단의 미혹을 이길만한 말씀으로 가르치는 진리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교회는 예루살렘 다락방에서 시작된 오순절 교회를 도저히 찾아 볼 수가 없게 된 것은 구약시대의 예루살렘 성전이 이방 세력에게 망하고 황폐화 된 것 같이 현 교회의 영적 상태가 마귀 흑암에 빠져 참된 교회를 다시 세우지 않는다면 재림의 주를 맞이할 수가 없을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짓듯이 지금 교회가 새로운 역사로 개혁되지 않으면 도저히 이 상태로는 새 시대를 이룰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스가랴 선지에게 예루살렘 성전 복구를 할 때에 보여준 묵시는 기독교 종말에 촛대교회의 역사를 보여주는 동시에 대표적인 여호수아가 사단에게 피해를 당하는 광경을 본 것은 종말에 촛대교회를 일으키는 역사에 대표적인 종이 나올 때 당할 시련을 보여준 것이다.
2대지 : 사단을 책망하심 (2~3)
하나님께서 아무리 당신의 종이 그슬려 더러워진 나무같이 되어 더러운 옷을 입었지만 그 종을 책망하지 않고 사단을 책망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 하나님께서 모략적으로 사단을 들어 대적하게 했으니 종에게 책망을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둘째 : 종이 끝까지 사단을 대적하다가 그슬려진 것이니 사람으로서 더 이상 할 수 없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그 종을 책망하지 않은 것이다. 사람의 실수도 자기가 욕심에 끌려 받는 시험도 있고, 마귀와 싸우기 위해서 받는 시험도 있으니, 우리 주님께서 받은 시험은 진리를 가지고 싸우기 위한 시험이었다.
이와 같이 촛대교회를 일으키는 역사를 하려면 정욕에 끌려 시험을 받는 정도이라면 안된다. 왜냐하면 마귀가 권세를 받고 나오는 때에 그 권세를 이기고 나가는 교회라야 남은 교회가 되기 때문이다. 적어도 촛대교회의 사자가 되려면 정욕에 끌리지 않고 진리 하나를 목적하고 사단과 싸우는 생활이 있어야만 될 것이다.
3대지 : 정한 관을 씌우심 (4~5)
하나님께서 시련기를 주는 것은 그 종을 망하게 하자는 것이 아니고 정한 관을 쓰는 왕권을 주기 위한 목적이다. 욕심에 끌려서 받는 시험은 회개할 문제가 있고 사명을 위하여 시험을 받은 것은 왕관을 쓸 조건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대표적인 종은 하나님께서 이미 죄과를 제해버린 종이므로 아무리 사단이 대적해도 마음에 사단이 들어와 역사하지 못하고 겉만 그슬려졌으므로 사람이 볼 때는 누명을 쓴 것 같으나 하나님은 그 종에게 대하여 회개하라는 말이 없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라고 하는 동시에 왕관까지 씌우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아들은 물과 피로 임한 몸이므로 그 몸에 죄가 없는 몸이시다.
그러나 여기의 종은 죄과를 제하였다는 것은 완전 개조를 시킨 몸이라는 뜻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여호수아를 예수로 본다는 것은 잘못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죄과를 제하였다고 하면 그 자체가 완전하지 못한 사람이란 뜻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므로 이 여호수아는 말세에 촛대교회를 일으키는 대표적인 종으로 보아야 되는 것이다.
결 론
사단을 들어 쓰는 이도 하나님이요, 종을 들어 쓰는 이도 하나님이시니 우리는 사단이 아무리 대적한다 하여도 절대적으로 택한 종에게 유익이 되도록 하시는 하나님이란 것을 배워야 할 것이다. 한때는 괴로운 것 같으나 그 시련을 벗어나고 뜻밖에 영광스러운 일이 올 때 더욱 감사하게 될 것이다.
제2과 택한 종의 축복
- 슥 3:6~10, 요절:10 -
서 론
가장 복 있는 자는 시련 가운데 떨어지지 않고 인정을 받은 종이다. 첫째아담은 사단을 이기지 못하므로 축복을 빼앗겼고 촛대교회의 사자는 사단을 이기므로 큰 축복을 받는 광경을 본문에 가르친 것이다. 이제 택한 종의 축복을 다음과 같이 알 수 있다.
1대지 : 자유로운 권세를 받음 (6~7)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사단을 대적시켜 시련을 준 것은 자유로운 권세를 주어 그 종을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되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게 해서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며 지키고 자유롭게 활동하게 하자는 목적이다.
아무리 사명을 맡았지만 사단의 시련을 이기지 못하고 사단에게 정복을 당한다면 오히려 사명을 옮겨갈 것이로되 그 종이 그슬림을 당할찌언정 정복을 당하지 않고 나가는 자라면 사단을 책망하여 물리치고 당신의 종으로 인정하는 동시에 모든 것을 맡겨서 자유롭게 활동하도록 하는 것이다. 가장 복된 일은 하나님의 집을 맡아 다스리는 자라고 보게 된다.
2대지 : 하나가 되는 일이다 (8)
금일에 종들이 하나가 되지 못하는 것은 가장 슬픈 일이요, 불행스러운 일이라고 보게 된다. 이것은 완전한 것을 받지 못한 원인이다. 지금은 각 교파가 갈려 있고 종들이 다 혼란 중에 있지만 완전히 무장을 갖춘 대표적인 사람이 나타날 때 어느 교파나 하나님이 기뻐하는 종이라면 자동적으로 하나가 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기 때문이다. 지금 종말관의 진리가 완전히 나타나지 않았으므로 참된 종들은 잘못된 노선을 가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만은 사실이다. 종이라는 사람은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면 하나가 될 수가 없을 것이로되 참된 종을 통하여 참된 하나님 말씀이 나타날 때 참된 종은 그 말씀으로 하나를 이루니 시련을 통과한 종을 통하여 모든 종들이 바로 깨닫고 하나가 되는 일이 얼마나 복된 일인가!.
3대지 : 세계를 통일함 (9~10)
하나님께서 이날까지는 머릿돌의 진리를 완전히 들고 나오는 종이 없게 한 것은 정한 때가 아니므로 각 종들에게 버림돌 예수의 진리를 증거하도록 한 것이다.
온 세계 인류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로 말미암아 얼마든지 죄 사함을 받게 되는 소식은 천하에 교회를 확장시킨 것이다. 그러나 버림돌 되시는 예수님이 재림할 때는 모든 성경의 말씀을 바로 깨닫도록 하기 위하여 일곱 영의 완전 역사가 임하는 동시에 진리가 완전히 새겨지는 역사가 있으므로 세계 사람이 다 하나같이 그 역사 아래에서 강권으로 죄악이 소멸되는 역사를 받게 되고 서로 하나가 되어 피차에 서로 초대하는 일이 있게 될 것이다.
오늘의 교회가 서로 담을 막고 자기 교파의 사람만 인정한다는 것은 기독교가 완전한 진리를 깨닫지 못한 원인이라고 보게 된다. 그러므로 대표적인 종이 나타나므로 모든 사람들이 진리가 정확히 깨닫도록 새겨지는 동시에 하루아침에 큰 변화를 받는 역사가 오므로 재림의 주를 맞이하게 될 것을 가르친 것이다.
결 론
할렐루야로 영광을 돌릴 일은 시련 끝에 남은 종이 나오고, 남은 종으로서 새로운 촛대교회가 나오고, 촛대교회로 말미암아 완전한 평화 왕국이 이루어지는데는 새로운 순의 종들이 나오므로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본다.
제3과 촛대교회의 권위
- 슥 4:1~9, 요절:6 -
서 론
촛대교회는 없던 교회를 개척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 있던 교회가 다 황폐화 된데서 다시 일어나는 교회다. 그러므로 이 교회는 완전한 교회로서 새 시대를 이루는 것이다. 세밀히 말하자면 시련이 없는데서 있는 교회가 아니고 큰 시련을 통과한 다음에 남은 자로 이루어진 교회이니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1대지 : 완전 준비가 된 교회 (1~2)
완전 준비란 것은 아무리 어두운 밤이 와도 빛이 꺼지지 않을 준비를 갖춘 교회다. 주 재림시에 남은 교회는 천국을 목적한 교회가 아니고 지상 왕국을 목적한 교회이니 만큼 아무리 흑암의 세력이 온 땅을 덮어도 그 흑암의 지배를 받지 않고 나가는 교회라야 순금 등대 교회가 되는 것이니 완전한 교회로써 새로운 왕국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2대지 : 인간의 힘과 능이 필요없음 (3~6)
기독교가 이날까지는 완전한 것을 이루지 못하고 완전한 교회를 이루기까지 개인적인 신앙에서 하나님과 교통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교회로서는 완전한 단체를 이루지 못하고 인간의 하는 일이 가입되어 여러 가지로 교회의 모든 사업에 부패성을 가져 온 일이 많이 있지만 이 촛대교회는 진노의 날에 남은 교회로서 조금도 인간의 힘이라는 것은 필요가 없고 직접 하나님의 신으로 다스리는 단체를 이룬 것이다.
왜냐하면 조금이라도 말씀이 혼선되면 진노의 날에 남은 교회가 될 수 없으므로 여호와의 신께서 직접으로 하나님 말씀이 혼선되지 않도록 가르쳐 주는 일이 있게 되므로 말씀이 완전히 밝아야 하고 남은 교회로 새 시대를 이루니 만큼 행정적인 사무에도 조금도 사람의 방법이 들어가지 않고 하나님 신의 명령에 의하여 움직이는 것을 촛대교회라 하는 것이니 권리 행사의 역사가 있으므로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단체를 이루게 된다.
다시 말하면 장성한 장부와 같은 신앙에서 움직이는 것이니 조금도 인간의 어떤 속된 것이 있을 수 없고 하나님의 권세로서 이루어진 교회다. 예루살렘 성전이 복구될 때에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난관에서 권리 행사가 나타나 원수를 제어하고 권세있게 쓰는 것을 촛대교회라 하는 것이다.
지금 교회가 종교 서적이나 모든 의식이나 행정이 극도로 속화된 이때에 신께서 이것을 전부 개혁시키어 촛대교회를 이루게 하는데는 택한 종에게 권세를 주어서 진리에 완전한 다림줄을 쥐고 다시 척량해서 집을 짓듯이 교회의 모든 혼선을 바로 세우도록 하는 것을 증인 권세 역사라 하는 것이다.
3대지 : 머릿돌을 내놓은 역사 (7~9)
이날까지 기독교는 버림돌 예수를 통하여 속죄 은총을 받았지만 머릿돌 예수님의 역사로 완전히 승리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머릿돌 예수는 권세 역사이니 원수가 다 그 앞에서 쓰러지고 말 것이다. 이날까지 은혜는 중생의 은혜요, 머릿돌 되시는 주님이 나타날 때의 역사는 원수의 세력을 없이하고 당신의 자녀만으로 남은 자가 되게 하는 역사이니 이것을 완전한 은총이라는 것이다.
결 론
촛대교회란 것은 완전히 끝을 맺는 역사를 뜻한다. 구약 역사가 예루살렘이 복구된 데까지 기록되어 있고 모든 선지 예언이 예루살렘이 복구되는 것으로써 인류 종말에 촛대교회를 가르쳐 하나님의 역사가 끝날 것을 말했다.
구약 교회의 모세 5경으로 선 교회는 어린 양 예수의 화목제로 완전히 끝을 맺고 예루살렘의 황폐와 복구는 신약 교회의 촛대교회로서 끝을 맺을 것을 가르친 것이니 촛대교회의 권위라는 것은 완전한 평화 왕국을 지상에 이루므로써 완전한 열매를 이루는 것이다. 세밀히 말하자면 은혜시대 교회는 천국을 목적했고 재림시의 촛대교회는 지상 왕국으로 끝을 맺는다.
제4과 감람나무 두 가지의 역사
- 슥 4:11~14, 요절:14 -
서 론
감람나무란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이제 산 생명의 활동이 있는 종의 역사가 감람나무이다. 생명이란 것은 하나님께 있는 것인데 자기가 무슨 주권을 쥐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역사하는 대로 순종하려는 것이 생명의 활동이란 것이다. 시52:8~9을 보면 “오직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의지하리로다. 주께서 이 일을 행하셨으므로 내가 영영히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이 선하므로 주의 성도 앞에서 내가 주의 이름을 의지하리이다.” 라고 다윗 왕은 말하였다.
이 말을 할 때는 사울 왕이 이유 없이 다윗 왕을 해코자하여 따라 올 때에, 그는 사울을 해코자 하지 않고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그에게 임하기 위하여 기도하는 마음으로 사울을 회개시키기 위하여 죽일 기회가 있어도 사울에게 인자를 베풀며 악을 악으로 대하지 않는 다윗이 될 때에, 사울은 하나님이 죽게 하고, 다윗은 만왕의 왕조가 되게 했으므로 그리스도의 왕국은 다윗의 왕국이라고 사9:7에 말했고, 다윗을 들어서 하나님은 시편을 기록할 때에 자기의 왕권을 감람나무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종말에 다윗 왕국을 지상에 완전히 이루는 역사를 감람나무라고 계11:4에 말했다. 이제 감람나무에 대하여 본문에서 공부할 때에 두 가지로 말할 수 있다.
1대지 : 등대 좌우에 있는 감람나무 (11~12)
이 순금 등대는 하나님의 제단을 가르친 것인데 예루살렘 성전의 제단인 지성소가 바벨론에게 파괴를 당하고 제사를 드릴 수 없는 자리에 70년간 있다가 동방 고레스의 명령에 의하여 그 제단을 다시 쌓게 될 때에 그 제단을 순금 등대로 묵시를 보여준 것은 기독교 종말에 황폐된 교회가 다시 왕권 받은 권세의 종을 통하여 이루어질 것을 가르친 것이다. 그러므로 주 재림 시까지 남아 있는 교회로 말미암아 이 땅에 다윗 왕국인 성도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지되 그리스도께서 사도 요한에게 ‘너는 내 대신 아들’이라고 한 것은 단지 마리아를 섬기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만왕의 왕이 되는 동시에 지상에 왕국을 이루기 위하여 역사할 사명은 사도 요한에게 있다는 뜻으로 계11:1에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면서 성전과 제단 안에서 경배하는 자를 척량하되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고 한 것을 보면 이방 세력에게 밟히지 않고 남아서 새로운 그리스도 왕국에 들어갈 자는 사도 요한에게 다시 예언하는 권세의 척량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이다.
이것은 사도 요한 당시에 된 일이 아니고 계시록 13장과 같이 붉은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어 마흔 두 달 동안 성도의 권세를 이기고 세계를 어지럽힐 때에 그 환란의 재앙을 받지 않고 남을 자는 사도 요한이 맡은 사명인 계시록을 통하여 역사가 일어나므로써 다윗왕국이 이루어질 것을 뜻하여 11:3에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 이백 육십일을 예언하리라. 이는 이 땅에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 라고 한 것은 사도 요한이 받은 계시록을 가지고 다시 예언할 시기는 주 재림 전 삼년 반 동안 변화성도가 기독교 종말에 예언을 증거할 것을 가르친 것인데 이 예언을 증거하므로 그 증거를 믿고 따라가는 자들이 모인 교회가 촛대교회란 것이다.
이 교회는 목적이 예언의 말씀을 지키기 위하여 뭉쳐진 단체이니 이 단체를 통하여 남은 종과 남은 백성이 새 시대에 들어가 다윗 왕국인 성도의 나라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상의 성도의 나라는 감람나무 왕권 받은 종들을 통하여 이루어지되 촛대교회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2대지 : 온 세상의 주 앞에 모셔 섰는 자 (13~14)
이것은 세계를 대표한 것인데 주께서 두 대표를 앞에 세웠다는 뜻으로 주 앞에 모셔 섰는 자라고 한 것이다. 이날까지는 주 예수님의 십자가로 세계에 모든 민족을 사망의 구렁텅이에서 올라오게 했고 마지막 때는 주님께서 두 종을 앞에 대행자로 세우되 그 종을 통하여 지상왕국이 이루어지도록 역사한다는 뜻이다. 막3:17을 보면 야고보와 요한에게는 두 사람을 합해서 이름을 ‘보아너게’ 곧 ‘우뢰의 아들’이라는 이름을 준 것은 말세에 뢰자적인 사명은 두 대표가 있을 것을 뜻했다.
예수란 이름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이요, 뢰자라는 이름은 원수 세력을 때려 없이하므로 새로운 시대가 온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두 감람나무 가지는 말세에 촛대교회의 역사로 새로운 시대가 이루어지는 일에 두 대표를 뜻한 것이다. 언제나 하나님은 그 시대의 사명을 행하는데는 대표자를 세우는 것이다. 대표란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응하여지는 일에 총 책임을 맡은 자이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실 적에 만민의 죄를 위하여 대신 죽어서 그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을 목적 두었고 주 재림시의 남은 종은 그들이 나가서 예언하는 목적이 지상 왕국을 이루기 위하여 목적을 두고 역사하는 데는 대표의 사람이 말씀을 통하여 권세를 받으므로 그 권세 아래에서 푸른 감람나무 같은 가지의 단체가 나온다는 것이다. 이것은 변화성도의 한 단체가 감람나무의 가지라는 종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촛대교회의 역사가 아니고는 새 시대의 다윗 왕국에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새 시대 왕국이라는 것은 영혼이 가는 것이 아니고 환란 가운데서 보호받고 남은 자가 다윗 왕국의 백성이 되는 것은 증인 권세 역사로 남은 교회가 된 촛대교회로 말미암아 남은 백성이 있게 되므로 지상에 새로운 왕국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결 론
감람나무 두 가지의 뜻은 부활 성도를 가르친 것이 아니고 주 재림시에 남은 종으로서 촛대교회를 이루게 되므로 새로운 왕국이 이루어지는 일에 대표적인 사람을 가르친 것이다.
제5과 저주를 받지 않는 촛대교회
- 슥 5:1~11, 요절:9상 -
서 론
하나님께서 이 땅을 저주의 두루마리로 망하게 할 때에 남을 교회는 촛대교회란 것을 보여준 것이다. 이날까지 교회는 죽은 영을 살려주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촛대교회가 나올 때는 저주의 두루마리가 온 땅을 덮을 때에 그 저주를 받지 않고 남은 자가 되어서 새 시대 가는 것을 목적한 것이니 이제 저주의 날은 어떠한 것이며 어떠한 교회가 남느냐에 대하여 공부하기로 한다.
1대지 : 저주의 두루마리가 들어가는 집 (1~4)
하나님께서 저주의 두루마리를 내 보낼 때는 진노의 날이란 것이다. 이날까지는 어느 사람의 집이나 다 같이 양식을 주고 자녀를 주고 평화롭게 살 수도 있게 했지만 저주의 두루마리가 어떠한 집에 들어간다는 것을 가르쳤다.
첫째 : 도둑의 집에 들어간다.
이 도둑이라는 것은 다음과 같이 볼 수 있다. 우리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만 영화롭게 한다는 것 외에는 전부가 다 도둑이 된다. 왜냐하면 종이란 사람은 주인의 것이니 오직 주인의 영광을 위하여 순종할 것 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공경하는 일은 하나님의 사랑의 법을 순종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모든 말씀을 주신 것은 사람에게 복을 주기 위한 목적인데 그 말씀을 순종치 않을 적에 자동적으로 저주를 받게 된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 모든 무리를 몰아낼 때에 “너희는 강도의 굴을 짓지 말라”고 했던 것이다. 이들은 전부가 다 자기의 직업적인 영리를 위하여 하는 것 뿐이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겠다는 마음이 없고 자기의 사는 생활을 목적 둔 것이므로 그들을 책망했던 것이다.
아무리 주의 종이라도 자기의 명예나 사리나 안락을 따른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집에 도둑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종이 하나님의 성금으로 생활하는 것이 도둑이 아니요, 그 마음에 양떼를 살린다는 희생적인 순교 정신을 가지지 않고 한 직업에 불과한 일을 한다면 이 사람을 도둑이라고 취급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없다면 아무리 그 사람이 그 말씀을 가르친다 하여도 이 사람은 열심을 이용하는 도둑이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재앙의 날에는 순교적인 생활에서 양떼를 위한 목적이 아니고는 다 저주를 받게 될 것이고 아무리 교회라 하여도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는 교회가 아니라면 다 저주를 받게 될 것이다.
둘째 : 망령되이 맹세하는 자의 집에 들어간다. 망령된 맹세라는 것은 다음과 같이 볼 수 있다.
① 우리 사람은 맹세할만한 자격이 없다. 하나님께서 이미 할 수 없는 인간에게 해 주겠다는 맹세를 세우셨으니 그 맹세를 믿고 순종한다고 하는 맹세밖에는 할 수 없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에 탈선이 된 일에 맹세를 세운다는 것은 망령된 일이라고 본다. 다시 말하면 오늘에 공산 기독교 연맹 같은 것은 다 망령된 맹세라고 본다. 공산 사상은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사상인데 공산주의 정치가 세계를 통일하는 일에 같이 일하겠다는 연맹이라는 것은 주님 앞에 망령된 일이라고 보게 된다. 또는 그러한 무리들과 같이 협상주의 노선으로 흐른다는 것도 망령된 맹세라고 보게 된다.
② 하나님께 세운 맹세를 지키지 않고 변경시키는 일이다. 적어도 하나님 앞에 맹세를 하고 지키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만홀히 아는 행동이 된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맹세를 세우고는 그대로 행치 않는다면 하나님은 참된 신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하물며 참되신 하나님 앞에 한번 작정하고 그대로 실천하지 않는다는 것은 망령된 행동이니 언제나 하나님 앞에 맹세를 세운 일은 지켜야만 저주에 해당되지 않는 남은 자가 될 것이다.
2대지 : 촛대교회의 승리 (5~11)
오늘에 각 교파가 자기의 교세를 확장시키며 교권으로서 세력을 잡고 있지만 이것으로서 승부를 이루는 것이 아니고 저주를 받느냐 받지 않느냐에 따라서 승부를 이루게 된다.
첫째 : 저주받은 교회의 형편을 에바 속에 들어간 여자로 보여주었다. 에바 속에 들어간 여자와 같은 교회는 악이라는 둥근 납으로 에바 아구리를 덮어서 그 여자는 캄캄하고 답답한 형편에 들어간 것을 말했으니 성신이 떠나고 저주의 두루마리가 들어간 교회는 캄캄한 흑암이 오고 아무런 은혜가 없이 답답한 형편에 떨어진다.
공기가 없고 빛이 없는 가운데서 생명을 보존할 수 없는 것 같이 저주받은 교회에서 그 영들이 살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여자는 영원히 저주를 받는다는 뜻으로 시날 땅으로 간다는 것이다. 시날 땅은 바벨탑을 쌓다가 저주받은 땅을 가르친 것이다.
둘째 : 축복 받은 교회 형편은 여인이 학의 날개 같은 것이 있는데 그 날개에 바람이 있더라고 했으니 이것은 가장 명랑하고도 용기있는 상태를 말했다. 축복 받은 촛대교회는 언제나 씩씩한 새로운 힘이 나리고 모든 진리가 밝아지기를 공중에서 싸우는 자가 사방을 보듯이 그 교회 영계는 극도로 밝아져서 완전 승리에 들어가는 형편을 보여준 것이다.
이제 앞으로 극도로 타락하는 교회도 있고, 영계가 발전하는 교회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것은 심판기에 하나님께서 버릴 자는 버리고 취할 자는 취하기 때문이다.
결 론
가장 복된 자가 촛대교회에 있고, 가장 가련하고도 불행스러운 자가 속화된 교회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촛대교회가 아니고는 저주의 두루마리를 피할 수 없고 재앙의 날에 남은 자가 되려면 촛대교회를 통하여야만 된다는 것을 묵시로 보여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