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년공과

26과 사명자의 생활

사명자의 생활
제1과 기도 생활
- 딤전 2:1~7, 요절:4 -

서 론
하나님께서 우주 공간에 대 사업을 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진리를 바로 깨닫고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을 목적 둔 것인데 이 사업은 사명자의 기도가 없이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역사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구원이라는 것은 인간의 힘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역사에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사명자의 기도에 의하여서만 역사가 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명자의 기도 생활을 본문에서 배우기로 하자.

1대지 : 완전한 기도가 있어야 함 (1)
완전한 기도라는 것은 자기가 자기를 위하여 하는 기도가 아니고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는 기도이다. 그런데 남을 위하여 기도하더라도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가 있어야 된다.
간구란 것은 최선의 힘을 다하여 해산의 수고를 하는 기도를 뜻했고, 기도라는 것은 항상 마음으로 원하는데서 끊어지지 않고 드리는 기도를 뜻했다. 이 기도는 장소나 시간에 대하여 어떤 규정이 없이 항상 하는 기도이다. 도고라는 것은 입을 열어서 늘 고백하는 기도니 사람의 이름을 불러 가면서 사정을 말해 가면서 드리는 기도다.
감사는 무슨 일이나 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깨닫고 핍박이 와도 고생스러워도 아무리 동역자에게 중상을 받는 일이 있다 하여도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있을 적에 이것은 오히려 영계가 속히 향상되는 동시에 하늘의 상급이 크게 되는 것이다.

2대지 : 국가의 안정을 위하여 (2~3)
나라의 운명은 하나님께 있고 정치인의 마음도 하나님이 주관하는 것을 믿고 기도해야 된다. 기독 신자는 국가를 떠나서 있는 것이 아니고 그 국가 안에서 생활하면서 국민의 정신과 사상과 생활을 개혁시키는 것이 사명이기 때문이다. 금일에 우리 나라에 하나님이 보호하사 라는 진리는 기독 신자를 통하여 이루어질 진리다.
사명자가 정치적인 야욕을 둔다는 것은 탈선이로되 정치인을 기도로 움직여 주는 것은 의로운 사람의 활동이라고 볼 수 있다. 한 사람의 기도가 하늘 보좌를 움직일 수도 있고, 원수의 나라를 물리칠 수도 있고, 모든 재앙이 물러갈 수도 있다는 것이 성서의 역사이라면 오늘의 모든 난제를 해결하는 것은 사명자의 기도 응답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소돔 고모라에 의인 열 명이 없으므로 망한 사실을 볼 때 의인이 다수는 못되어도 합심하여 올리는 기도가 국가를 움직이는 생명선이 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라고 본문에 가르쳤다.

3대지 : 기도에 대한 하늘의 활동 (4~7)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라고 본문에 기록했다.
하나님은 중보자 되시는 예수님의 대언기도를 통하여 세계 만방에 대 확장을 가져오도록 복음 운동을 전개시킨 것은 전부가 사명자의 기도 응답이 예루살렘 다락방에 성령의 불이 떨어져서 온 세계를 덮게 된 것이니 전부가 사명자의 기도의 응답으로써 이루어진 현실에 앞으로 온전히 성도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은 사명자의 기도 응답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결 론
사명이라는 것은 각각 분야가 다르지만 전부가 다 기도 응답으로 그 사명을 감당하게 되는데는 그 중보자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니 우리는 대언자 예수님과 항상 긴밀한 연락을 기도로 하는 데서만이 승리의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이다.

제2과 사명자 남녀 구별
- 딤전 2:8~15, 요절:11 -

서 론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가장 으뜸이 되는 남자를 창조하시었다. 그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이루어진 인격이다. 그러나 그가 홀로 있는 것을 합당치 않게 하나님은 보시었다. 왜냐하면 천국을 목적 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큰 사명을 가진 남자를 돕는 배필이 있어야만 되겠으므로 남자의 사명적인 영광을 위하여 여자를 창조한 것이다.
고전11:7을 보면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라고 바울은 가르쳤다. 9절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 받은 것이니”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타락하기 전 에덴 동산에서와 같이 사명자는 남녀의 구별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죽은 영들인데 중생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동시에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명을 받은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열 두 제자를 택할 때도 남자들로만 택한 것은 아무리 예수님의 은혜로 되는 일이라도 남녀의 구별을 둔 증거라고 본다. 주님 당시에도 많은 여종들이 따라가며 물질로 봉사하고 끝까지 수종을 들은 사실을 볼 수 있다. 이제 남녀 구별을 본문을 통하여 분명히 알 수 있다.

1대지 : 남자의 합심 단결이 있을 것 (8)
남자라는 것은 분노와 다툼이 없어야 된다는 것이다. 사명자가 분노와 다툼이 있다는 것은 큰 과오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만왕의 왕을 따라가는 자가 되려면 완전히 십자가에서 정과 육이 죽어야만 사명자의 인격을 가진 것이다. 마귀와 싸우는 군대가 되려면 싸우는 사명자 인격이 사단의 본질인 분노와 다투는 일이 없이 되어야만 될 것이다.
우리가 마귀와 싸우는 군대로서 마귀를 대적하는 싸움 외에는 다른 일에 분노한다든지 싸우는 것은 벌써 영적으로 사단에게 정복을 당하는 시간이니 이것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할 때 여기서 더 사명을 할 수 있는 역사가 내리는 것이다. 언제나 사명 가진 남자들이 단결할 때에 역사는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이다. 아무리 사명자라도 합심하여 하나가 되는 일이 없다면 하나님은 역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복지를 점령할 때에도 열 두 정탐꾼이 하나가 못되고 다툴 때에 40일이 40년으로 연기된 일이 있고 황폐된 예루살렘이 복구될 때에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가지고 예루살렘에 돌아왔지만 합심이 못되고 서로 다툴 때에 15년간 연장된 일이 있다. 그러므로 바울은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한 것이다. 이 글은 로마 옥중에서 환란을 만난 바울의 간곡한 부탁이었다. 어려운 환란이 올 때에 남자들이 합심하여 기도하여야만 된다는 것이다.

2대지 : 여자의 순종과 종용 (9~12)
하나님께서 여자를 창조할 때 남자보다도 연약하고 부드럽고 아름다운 태도를 주어서 낸 것은 남자가 맡은 사명을 돕기 위하여 순종하면 된다는 뜻이요, 일선에 나서서 싸우라는 인격은 아니다. 또는 우렁찬 남자의 위엄을 무시하지 말고 종용히 그 권세 아래서 수종을 드는 자가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대표적인 종을 남자로 세운 것은 그 사명 아래서 여자는 순종하고 종용하게 해서 도와주라는 것이다.
순종이라는 것은 남자가 두려워서가 아니고 순종하므로써 종용히 배우는 자리에서 남자를 가르칠 수 없고 남자를 주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자가 여자를 배워주고 주관할 수는 있을 수 있으나 여자가 남자를 주관한다는 것은 사도바울의 신앙 양심에서 허락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3대지 : 남녀의 선후 관계 (13~15)
하나님께서 남자 아담을 먼저 지었고 하와를 후에 지은 뜻은 남자에게 먼저 모든 것을 맡기고 다음에 여자를 창조하여 그 맡긴 일을 돕기 위해 두었던 것이다. 여자가 먼저 꾀임을 받고 죄에 빠졌으므로 남자에까지 그 영향이 미친 것은 여자에게 죄에 빠진 책임이 있으므로 여자는 해산의 수고를 하는 것이 있으므로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게 되므로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여자는 홀로 왕권을 받을 수는 없고 남자가 받는 왕권에 가입할 수가 있게 된다. 그러므로 언제나 여자의 사명을 남자가 돕는 것이 아니고 남자의 사명을 여자가 돕는 것을 하나님은 원칙으로 했던 것이다.

결 론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은 이미 남자에게 임한 것인데 그 사랑 속에서 남녀가 다 같이 영광을 누리게 된다. 이와 같은 뜻으로 예수님도 성령으로 잉태될 적에 물과 피로 임하여 남자의 형상을 이루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고 하셨으니 하나님도 자기를 가르쳐 나는 네 남편이라고 사54:5에 말했고 예수님도 자기를 신랑으로 말씀한 것은 하나님의 형상이나 아들의 형상이 다 남자의 형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모든 영광은 다 남자의 영광이라고 볼 수 있다(사62:5).

제3과 사명자의 사생활
- 딤전 3:1~7, 요절:1 -

서 론
하나님께서는 은밀한 가운데 살피시되 사명자의 사생활에 있어서 작은 일에 바로 하는 자라야 큰 일을 할 수 있도록 역사를 내리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의 일을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것에 따라서 왕권을 받는데 까지 이르기 때문이다. 예를 든다면 나무가 대중이 보도록 아름다운 열매를 맺되 열매로써 일하는 자에게 힘을 공급하는 것과 같이 사명자가 항상 사생활에서 바로 되는 자라야 대중을 살리는 열매있는 종이 될 것이다. 이제 크게 쓰는 일꾼이 되려면 어떠한 생활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본문에 가르친 것이다.

1대지 :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1)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가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 있고 없는데 따라서 열매는 따라가는 것이다. 어떤 종이 주의 일을 할 때에 중심에 사모하는 마음이 없다면 중심보시는 하나님이 일을 한다 해도 외식하는 자라고 보게 될 때에 오히려 죄가 된다(마24:51). 누구든지 사명을 맡은 자로서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기도할 때부터 하나님은 일할 수 있는 은혜를 내리므로 열매가 있게 되는 것이다.

2대지 : 가정이 바로서야 한다 (2)
가정은 사명자가 일할 수 있는 힘을 주는 내장과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부부의 신성과 절제, 근신이 있으므로 아담한 가정이 되어야 한다. 가정에서부터 신성을 떠나고 절제있는 생활이 없게 된다면 그 종은 아무런 활동을 할 수 없는 몸이 된 것과 같으니 자동적으로 힘을 낼 수 없고 열매를 맺는 단계에 들어 갈 수 없다.
그러므로 사명자의 가정은 성도를 육적으로도 대접할 수 있고 영적으로도 진리를 잘 가르칠 수 있는 생활이 있게 될 때에 큰 일을 할 수 있는 종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종이 남에게 누를 끼치는 생활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 떠난 증거라고 볼 수 있다.

3대지 : 거룩한 인격을 이루어야 된다 (3)
하나님의 종은 그 몸이 존귀한 몸이니 그 몸을 정상적인 인격에서 움직여야 한다. 만일 취하는 술이나 또는 혈기내는 일이나 입으로 다투는 일이나 또는 물질에 끌리는 몸이 된다면 사명자의 인격을 상실한 자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먹는 일이나 혈기를 내는 일이나 다투는 일이나 돈을 따르는 일에 치우친다면 그 인격은 대중을 지도할 인격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러므로 대중을 지도하는 종이 되려면 항상 너그러이 남을 용서하는 마음에서 움직이는 인격을 가져야 될 것이다.

4대지 : 가정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4~5)
가정이라는 것은 작은 것 같으나 큰 것이요, 가장 존귀한 것인데 가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 대중을 지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가정의 자녀가 하나님이 함께 하는 증거를 알도록끔 되는 종이 되어야 한다. 만일 자녀가 업신여기고 대적을 하게 된다면 벌써 그 종은 하나님의 종의 권위를 가정에서부터 상실한 자라고 보게 된다. 왜냐하면 가정에 식구들이 감동을 받는 일이 없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이 같이하지 않는 증거라고 보게 된다.
사44:3을 보면 “나의 신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내리리니” 하였고 49:25을 보면 “너를 대적하는 자를 내가 대적하고 네 자녀를 구원할 것임이라” 하였고 66:22을 보면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을 것 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참으로 복 받을 종이 될 때에 가정 축복은 반드시 따라오는 것이다(마19:29).

5대지 :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는 자가 되어야 한다 (7)
사람이라는 것은 불신자도 양심이 있는 것이니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종이 될 때에 교회 밖의 사람도 그 종을 참 종이라고 인정을 하게 된다. 언제나 교회 밖의 사람들이 그 종을 무시하지 못하고 옳다고 증거하게 될 때 자동적으로 그 종은 전도할 문이 열리는 것이다. 전도란 것은 말에 있지 않고 먼저 열매에 있어야 한다.

결 론
하나님께서 가장 위대한 신이시지만 가장 세밀하시고 가장 무소 불능한 신이시지만 지극히 작은 백합화 한 송이까지도 입히시는 것이며 공중에 나는 새 한 마리도 먹을 것을 주시는 신이시니 이러한 하나님의 종이 되려면 사생활에서 바로 나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

제4과 사명자의 목회 생활
- 딤전 3:14~16, 4:6~16, 요절4:15 -

서 론
인류 생활에 가장 가치 있는 일은 목회 생활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정당 생활은 국민의 육적 생활을 지도하는 거요, 공장 생활은 물건 하나를 위한 생활이요, 군인 생활은 적군을 막기 위한 생활이요, 농민 생활은 열매 하나를 식물에서 얻고자 하는 생활이요, 상인 생활은 자기가 이익을 바라보는 생활이다. 그러나 목회 생활이란 것은 하나님의 대행자로서 모든 생명을 영생 세계로 인도하는 생활이다. 이 생활이라는 것은 저주받은 생활을 벗어나서 자신이 복을 받고 그 복 받는 진리를 남에게 가르쳐 주는 생활이다. 이제 목회 생활에 있어서 본문을 통하여 요소가 무엇인 것을 알 수 있다.

1대지 :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라는 것을 알고 행하여야 된다(3:14~16)
조금이라도 진리가 혼선되면 교회가 아니요, 진리가 정확히 바로 서므로만이 하나님의 교회인 것을 알고 자신이 진리에 온전히 바로 서는 일에 전력을 두어야 한다.

2대지 : 형제를 깨우치는 일을 해야 된다 (4:6)
목회자는 언제나 깨우치는 일이 있게 된다면 자신이 발전할 수 있는 요소가 된다. 예를 든다면 싸우는 군대가 자기 홀로 싸울 수 없고 다 같이 정신을 차려야 되듯이 언제나 하나님의 종은 대중을 깨우쳐 주는 일이 있을 때에 모든 일은 순조롭게 되는 것이다.

3대지 :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해야 된다 (7~8)
사람이라는 것은 완전해져서 일을 하는 것보다 일을 하면서 바로 서도록 연습할 때 성령은 그것을 기뻐하시고 나날이 발전해서 바로 일할 수 있는 생활에 이르도록 역사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목회자는 모든 일을 경건하게 나가 보려고 연습적으로 노력할 때에 경건한 생활이 전부 이루어지는 열매를 보게 된다.

4대지 : 소망을 하나님께만 두고 노력하여야 한다 (9~10)
목회자는 조금도 사람에게 무엇을 얻어 보려고 할 때에 그 시간에서부터 실패다. 언제나 하나님이 갚아 주시는 것만을 바라보는 마음이 불탈 때에 하나님은 친히 갚아 주시는 것이다.

5대지 :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야 한다 (11~13)
모든 사람은 다 완전한 사람이 아니요, 부족한 사람들이라도 한 단체가 되어 그 대표적인 사람의 철저한 인격에 감화를 받고 따라가므로 좋은 열매를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니 목회자는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의 본이 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인격으로써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일에 착념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6대지 :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내어야 된다 (14~16)
언제나 목회자는 새로운 것이 있어야 된다. 예를 든다면 모든 식물이 새로이 진보하는 것이 없다면 열매를 거둘 수 없고 그 열매가 없이는 사회 생활을 이룰 수가 없음같이 목회자가 강단에서 설교할 때마다 새로운 것이 있어야 모든 영들은 그를 통하여 나타나는 역사에서 활동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되려면 전심 전력을 다해야만 되는 것이다.

결 론
가장 복된 자는 하나님의 집을 맡아서 주님 올 때까지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주는 자라고 보게 된다(마24:45~47).